영화 덩케르크를 본 후엔, 말이 좀처럼 나오지 않았어요. 일반적인 전쟁 영화처럼 인물의 감정이나 드라마에 집중하지 않고, ‘상황 자체’로 감정을 말하게 만든 영화였거든요. 대사도 적고 설명도 거의 없는데, 오히려 그래서 더 숨이 막히듯 몰입했어요. 내가 직접 그 해변에, 바다에, 하늘 위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.
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특유의 시간 구조도 인상적이었어요. 땅에서는 일주일, 바다에서는 하루, 공중에서는 한 시간. 이 세 가지 이야기가 따로 흘러가다가, 마침내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엔 진짜 전율이 오더라고요. 그 모든 퍼즐 조각이 완성될 때 비로소 ‘전쟁’이라는 거대한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느낌이었어요.
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는 건, 소리였어요. 총성과 폭격 소리, 적막, 그리고 한스 짐머의 음악까지… 그것만으로도 감정이 요동쳤어요. 이 영화는 누가 주인공인지보다, ‘누구든 이 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떤 공포를 견뎌야 했는가’를 이야기하는 영화였어요.
덩케르크는 감정을 말하지 않고도 감정을 가장 강하게 전달하는 영화였어요. 전쟁의 영웅이 아니라, 단지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. 그래서 더 현실 같고, 더 아프게 남았어요. 조용하지만 강하게,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작품이에요.